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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헛소리

by 장한섬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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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스맨> 2015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헛소리

결론부터 말하면,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지성을 갖춘 자가 매너 있게 행동할 뿐이다. 나아가 냉소적으로 덧붙이면, 매너를 강요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매너를 갖춘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사회성을 갖췄다는 뜻이지만, 그 이면에는 문화자본을 장착했다는 것이고, 그 문화자본을 갖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신분증으로 남용된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 <귀여운 여인>(1990)에서 거리의 여자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이 호텔 식당에서 테이블  매너(식기 사용 순서)를 모르자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는 매너 있는 신사께서 슬쩍 가르쳐준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에서 에드워드(리차드 기어)가 관객 매너와 오페라클라스 망원경 사용법을 가르쳐주며, 백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서 거리의 여자가 어떻게 매너 있는 숙녀로 탄생하는지를 샘플링한다. 이는 품성과 지성의 결과가 아닌 기성질서를 유지하는 정치 경제의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진입장벽 높은 문화자본은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저서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말한 ‘계급의 차이’를 형성한다.

 

 

"매너의 차이는 문화획득 양식상의 차이 즉 지배계급에 도달한 시기의 격차를 가리키는데, 이 양식상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구조(structure de capital)의 차이와 연결되어 있다. 마치 문화자본의 차이가 각 계급 간의 차이를 나타내 주듯이, 이러한 구조상의 차이는 지배계급 안의 차이를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새물결, 최종철 옮김, 2006, 上, 137쪽)

 

 

역사는 매너가 아닌 용기를 사랑한다

매너를 우선하면 변화를 멀리하고, 기득권을 가까이 한다. 정치적으로는 공론화를 위축시키고, 다원성을 규격화한다. 즉, 매너는 예의를 갖춘 탈정치화를 부추긴다(시끄럽게 따지지 말고 점잖게 남들처럼 행동하라). 그래서 매너 있는 신사숙녀만 있는 세계에서 공론은 일어나기 어렵다. 공론은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예의범절은 순응과 호응을 부추기며 차이와 다름에서 오는 불안을 제거하고, 미래에 대한 관망과 예측 그리고 비전에 대한 창의적 실험 대신 안정적인 현실 속 구조를 고착화한다.

역사를 보면 신사와 숙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다. 195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에 저항하고자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는 매너 없게 백인 전용좌석에 앉는다. 이 매너 없는 짓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번졌고, 이 매너 없는 행동으로 역사는 로자 파크스를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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