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베트남
영화 [록키]는 제49회 아카데미 시상식(1977)에서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받는다. 이 중 작품상은 시상식 중 마지막에 발표하는 상으로 최고의 상을 의미한다.
영화 속 록키는 패배자다. 그것도 유색인종(흑인)에게 패배한다. 그럼에도 관객(미국)은 최선을 다한 패자 록키에게 박수와 존경을 보낸다. 무명 복서 록키에게 초강대국 미국이 열광한 이유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세워줬기 때문이다.
영화 [록키]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1960~1975)에서 패전한 이듬 해(1976) 상영한다.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1963) 이후 자신감을 상실하고, 베트남 전쟁은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미국 제37대 닉슨 대통령(재임 1969~1974)은 워터게이터 사건으로 탄핵 직전 사임한다. 미국은 점점 불안에 빠진다. 이 시기 미국의 정서는 공포영화로 표현된다.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의 시대는 미국 호러 영화의 위대한 시기였다. 즉 호러 장르의 완전한 의미가 떠오르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위기의 순간이 요구되었으며 곧바로 이어진 문화적 붕괴 현상은 일시적인 정치 상황보다 더 문제시되었던 것이다.”
- 로빈 우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시각과 언어, 1994, 이순진 옮김) 168쪽
베트남 전쟁에서 패전한 1975년 미국 최고 흥행영화는 [죠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닷속 죠스는 베트남 밀림(땅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죽어간 미군 병사와 가족(미국)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고, 초강대국 미국이 아사이의 조그마한 유색인종 나라에게 건국 이후 첫 패배를 당한 충격을 은유로 보여준다. 미국이 패배의 충격과 공포로 흔들릴 때 영화 [록키]가 등장하여 패배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의 지키는 남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전장의 링을 등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암시한다(그 후 록키-실버스타 스탤론-는 영화 [람보]로 고향 Home에 돌아온다).
영화 속 명장면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도시를 달리는 록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이민자 노동계급 백인들)에게 응원을 받고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올라 도전자가 아닌 승자처럼 두 팔을 올리고 아침을 맞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완성하는 것은 계단도 아니고 미술관도 아닌 도시(필라델피아) 그 자체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는 미국독립선언문이 작성되고 발표된 곳이다. '자유의 종(Liberty Bell)'이 있는 도시로, 한때 미국의 수도였다. 즉, 미국 독립을 잉태한 도시이고, 미국의 정체성을 낳은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와 배경으로 영화 [록키]는 비틀거리는 미국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세운 공로로 (베트남 전쟁의 패전국)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다. 그 후 미국은 자신들의 건국신화를 새롭게 쓸 자신감을 찾고, 영화 [스타워즈](1977)를 제작한다(어둠의 세력은 나치 독일군을 연상시키고, 저항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미국을 상기시킨다).
“집은 본질적으로 실버스타 스탤론이 <록키>에서 복권시키려 했다고 말한 바 있는 '예전의 선한 가치들', 즉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같은 책, 208쪽)
“루카스의 영화는 상상의 인물들(로보트, 츄바카)로 대신하지만 그들은 정확히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우월성에 몰입하게 만든다. (중략) 그리고 〈스타워즈>의 절정부에서 우리 편이 적을 하늘에서 폭파시켜버릴 때 우리는 여전히 환호할 수 있다. 같은 식으로 주입된 애국심, 인종주의, 군국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숭배되고 찬미된다.” (같은 책, 210쪽)
에이즈&필라델피아
레이건-부시 공화당 정권(1981~1993)이 민주당 클린턴 정권(1993~2001)으로 교체되자 강력한 아버지(남성)상을 대변하는 ‘하드 바디’(람보, 코만도, 로보캅)의 세계관은 영화 [필라델피아](1993)의 등장으로 균열이 생긴다(영화 [못말리는 람보]는 희화화한다).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주인공 백인남성 앤드류(톰 행크스)는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적인 백인남성들로 구성된 회사 중역들에 의해 해고된다.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록키]와 대비되는 것은 주인공 백인 남성 앤드류를 변호하는 것은 그의 라이벌 유색인종(흑인) 조 밀러(덴젤 워싱턴) 변호사다. 흑인으로 차별받던 조 밀러는 동성애자(에이즈 환자)에게 보내는 세상의 혐오와 싸우고자 앤드류를 변호한다. 그러면서 영화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정신을 구현한다(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백인 남성 앤드류 역을 맡은 톰 행크스가 받는다).
영화&도시
어떤 영화로 남느냐는 어떤 장소를 담느냐로 결정된다. 이는 장소의 매력이 아닌 영화의 위력으로, 도시 정체성 나아가 국가 정체성을 결정한다. 카사블랑카는 지도에 표기된 아프리카 항만도시가 아니라 아메리카 영화 [카사블랑카](1942)에서 연인 릭(험프리 보가트)과 일리자(잉그리드 버그먼)가 재회한 도시로 친숙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의 도시이다(1943년 연합군 정상회의가 카사블랑카에서 열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타임머신이자 텔레포트(teleport, 순간이동)이다.
최근 지자체마다 영화 로케이션(현지촬영) 지원으로 도시 이미지 상승과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경쟁이 뜨겁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로 군산이 ‘초원사진관’으로 기억되자 군산시는 철거된 초원사진관을 복원시켜 사람들이 군산을 찾게 한다. 제천의 경우 영화산업이 없는 곳이었으나 영화 [박하사탕](2000)을 계기로 2005년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개최한다.
위 사례는 영화로 인해 새로운 장소가 창조되어 쇠락한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을 문화도시로 격상시킨 긍정적인 경우이다. 그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칠하고 고착시켜 도시의 미래를 냉전시대와 산업화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도시가 인천(仁川)이다. (#04_권력과 공간② ‘맥아더&인천’, ‘반공&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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