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문, 통곡의 벽과 광화문 너머 무지개를 수놓다
홍예문(虹霓門)은 글자 그대로 무지개(虹)와 무지개(霓)가 통하는 문(門)이다. 인천시 유형문화재(49호) 홍예문은 조선인의 삶터에 일제의 기술과 중국인 노동이 결합한 동아시아 문화집적체다(1908). 식민지 건설을 주도한 일제는 혈문(穴門:구멍문)으로 불렀지만, 인천의 주민은 무지개를 닮았다 하여 홍예문(무지개문)이라 부르며 오늘에 이르렀다.
새로운 대상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명명(命名)은 관계를 설정하고 세계관을 제시한다. 권세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수여하는데, 홍예문은 ‘밑에서 옆으로’ 소통하며 오간 삶터 주민이 명명했다.
고정된 뚫린 문(穴門)을 색채와 형태로 생동하는 무지개로 바라본 조상의 미감은 인천의 저력이고, 인천의 비전은 그 속에 있기에 홍예門문화연구소는 공동체의 기억과 장소성 그리고 미감(美感)을 지역문화의 원천으로 삼는다.
광화문 너머
인천(仁川)의 홍예문은 한양도성(都城)의 광화문(光化門)처럼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구분하지 않는다(광화문은 수평적 소통을 위해 열린 문이 아닌 수직적 위계의 궁궐 안으로 들어가는 사다리다). 홍예문은 위에서 아래로 통일하는 단일 이념으로 다양성과 다원성 그리고 다층성을 억압하지 않는다. 수평적 소통을 위해 항상 열려 있고, 안팎의 구분 없이 양쪽 위로 무지개가 떠 있다.
통곡의 벽 너머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Western Wall)’은 이스라엘이 로마 식민지로 전락하자 ‘통곡의 벽(Wailing Wall)’으로 명명된다. 하지만 일제의 혈문은 인천의 무지개문으로 재창조된다. 위정자가 아닌 삶터 주민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담아내는 무지개로 창조한다.
홍예門문화연구소는 ‘밑에서 옆으로’ 소통하고 다원성을 위한 비전을 무지개처럼 창조하고자 한다.
홍예門문화연구소 대표 장한섬
댓글